(봉화=연합뉴스) 윤관식 기자 = "할아버지는 우리가 베트남 왕족의 후손이니 항상 행실을 바르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베트남 왕족 후손임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습니다." 14일 오전 9시께 경북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 전형적인 한국의 시골 마을이지만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커다란 한옥 형상의 건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얼핏 보아서는 시골 마을에 커다란 한옥 건물이 자칫 뜬금없어 보였지만, 그 형상이 궁금증을 자극했다. 한창 공사 중인 현장 외벽에는 'K-베트남밸리 다문화커 5000만원 대출 뮤니티센터 건립공사'라고 적혀 있었다. 신축 중인 건물은 일반적인 한옥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높은 지붕과 끝이 솟아오른 처마. 베트남밸리라는 말에서 조금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3천km 떨어진 이국의 모습이 어려있는 이곳은 베트남 왕족의 후예 '화산 이씨' 집성촌이다. 화산 이씨는 안남국(安南國·베트남)의 리(ly) 왕조 개국왕인 이공온(李公蘊)의 6대손 이용상(李龍祥)을 시조로 한다. 이용상은 안남국에 정란이 발생해 왕족이 멸족할 위기에 학자금대출 신청기간 놓이자 한반도로 망명했으며, 당시 조정에서 그에게 '화산 이씨'라는 본관을 하사했다. 봉화군은 이용상의 둘째 아들인 이일청이 안동부사로 부임하며 화산 이씨 집성촌이 생긴 곳이다. 이곳에는 이용상의 13세손인 이장발의 충효 정신을 기리는 '충효당'이 있다. 이장발은 임진왜란 때 19세의 나이로 의병 참전 새마을금고 학자금대출 해 순직했다. 순직 당시 그의 품에는 충심과 효심을 담은 절명시가 발견돼 그 내용이 충효당 기둥에 걸려 있다. 마을 초입의 다문화커뮤니티센터와는 달리 충효당은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지극히 한국적인 충효당의 한쪽에 단아하게 새겨진 연꽃 문양만이 이곳이 베트남 왕족의 후손을 기리는 곳임을 기품있게 알리는 저축은행무직 듯했다. 연꽃은 베트남의 국화다.
충효당에 걸린 절명시와 아래에 새겨진 연꽃 [촬영 윤관식]
충효당 바로 앞에 위치한 집에서 화산 이씨 봉화종친회 사무국장인 이시창씨를 만났다. 이 씨는 충효당의 방 한군데를 열고, 그곳에 앉아 화산 이씨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지금은 7가구만 살고 있는 집성촌이지만, 어렸을 때는 상당히 많은 화산 이씨들이 살고 있었다"라며 "어렸을 적 이곳(충효당)에서 할아버지에게 조상에 대해 교육을 받곤 했다"고 말했다. 이어 "할아버지는 '우리가 베트남 왕족의 후손이니 항상 행실을 바르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며 "베트남 왕족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1992년 베트남과 수교 전에는 월남전 등을 이유로 외지인에게 모욕적인 말을 들었던 것도 기억난다"며 "수교 이후 베트남에 초청되고 했을 때는 집안 어른들께서 매우 기뻐하셨다"고 말했다. 이 씨는 "선대 어른들은 한반도로 이주한 화산 이씨가 800년 동안 반듯하게 살아온 역사를 알리기 위해 많이 노력하셨다"며 "어떻게 보면 망명 등 슬픈 역사가 있는 우리 화산 이씨의 역사를 한국과 베트남의 새로운 접점으로 만들어 기쁨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K-베트남밸리 조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화산 이씨 봉화종친회 사무국장 이시창씨 [촬영 윤관식]
이곳에는 화산 이씨의 후손들뿐만이 아닌 베트남에서 이주해온 주민들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 지난 3월께 봉화군으로 이주한 선예나(여·39)씨는 2006년 한국 땅을 밟은 베트남 출신 귀화 국민이다. 선 씨는 현재 봉화군에 거주하며 화산 이씨 종친회와 함께 K-베트남밸리를 만드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날은 베트남에서 한국을 알리기 위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는 "사실 한국에서 살며 봉화군에 리 왕조의 후손이 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며 "베트남 커뮤니티 등을 통해 화산 이씨 집성촌이 있고, K-베트남밸리를 조성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K-베트남밸리를 만드는 것이 베트남 조상이 한국에 있었다는 것에 대해 우리 아이들에게 알리고 이어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자 봉화군으로 이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렇듯 주민과 이주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조성에 팔을 걷어붙인 K-베트남밸리 조성사업은 봉화군의 중점 사업으로 진행 중이다.
봉화군 화산 이씨 집성촌 [촬영 윤관식]
봉화군은 화산 이씨 집성촌인 봉성면 창평리 일원 11만8천890㎡ 부지에 2033년까지 사업비 약 2천억원을 들여 K-베트남밸리를 조성한다. 해당 부지에는 역사지구, 문화교육지구, 휴양지구, 교류의길 등이 들어선다. 역사지구에는 베트남 리 왕조 유적지를 개발하며, 리 태조 동상 등 역사 시설물을 설치한다. 문화교육지구에는 한-베 역사문화콘텐츠 센터, 다문화국제학교, 연수·숙박 시설 등을 짓는다. 또 휴양지구에는 다랭이논 체험장, 연꽃 모양의 게스트하우스, 사당 및 정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교류의길에는 탐방로와 수변정원, 전망대, 인도교 등을 설치할 예정이다. 봉화군 관계자는 "베트남 리 왕조 후손의 유적(충효당, 유허비, 재실 등)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고, 후손들이 거주하는 유일한 곳이 봉화군이다"라며 "한-베 양국을 잇는 인적·물적 네트워크의 거점이 될 수 있는 베트남 다문화인들의 요람으로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봉화군은 오는 24일 K-베트남밸리 다문화커뮤니티센터 준공식과 함께 리 태조 동상 제막식도 열 계획이다.
작성일 : 25-08-15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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